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문단 편집) === 2차 출어, 사고 발생 === 그러나 삼양수산은 포기하지 않고 1967년 7월과 8월에 걸쳐 추가로 어선 7척과 냉동 및 통신시설을 갖춘 중고 모선을 구매하여 그해 8월 17일 2차로 북태평양을 향하여 출항하였지만 [[동해]]에 진입하면서 모선의 냉동시설이 고장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본]] [[하코다테]] 항에 입항하여 수리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일본 측에서는 선원들의 상륙을 허용하지 않는 [[몽니]]를 부렸다. 위기에 빠진 선단은 한국 본사에 급히 지원을 요청했고 다행히 삼양수산과 협력 관계인 일본 회사의 기술진이 선단을 방문하여 냉동시설을 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15일을 허비한 후 삼양수산 선단은 하코다테 항을 떠나 다시 출어에 나섰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9월 15일 [[알류샨 열도]]의 암치트카 섬 남쪽으로 약 60마일 떨어진 조업장에 도착한 선단은 곧바로 흩어져 조업에 들어갔지만 날씨가 [[복병]]이었다. 이미 해상은 이틀 전인 9월 13일 부터 5m에 달하는 높은 파도가 일었고 14일은 무려 10m가 넘는 파고에 초속 40m의 폭풍우까지 불어닥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한국 수산청이 침몰 경위를 조사코자 어업담당관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일본 기상청|현지 기상청]] 직원이 사고 당시의 기상 기록을 보고 '''"세상에! 이런 상황에서 조업을 했단 말인가?!"''' 라며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당시 상황은 '''[[태풍]] 25호, 중심기압 964[[파스칼#s-3|헥토파스칼]], 풍속 25m/s, 파고 25미터'''였고 더 경악스러운 것은 바로 인근에 '''후속 태풍 26호가 불과 수백 마일 거리로 접근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직원은 '''"그런데도 8척 중 2척만 화를 당했다니 이건 오히려 [[기적]]이다"'''라며 고개를 저었고 수산청 어업담당관은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모선이 각 자선들에게 주의경보를 내리고 어찌해야 할지 지침을 알려줘야 했지만 갑작스런 풍랑에 배가 흔들리며 당황한 모선 선장은 이를 깡그리 망각했고 다른 자선 7척도 배가 상하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통에 선원들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다음 날인 16일 아침 제7삼수호와 제8삼수호 두 척의 어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였다. 이 때 7삼수호는 15명, 8삼수호는 14명의 선장 및 선원이 타고 있었으며 [[부경대학교|부산수산대학]] 학생 8명이 실습 선원으로 8대의 어선에 한 명씩 탑승해 있었다. [[파일:삼양수산_선단.jpg]] 출어를 앞두고 있던 삼양수산 [[원양어선]] 선단 [[파일:삼양수산_사고.jpg]] 당시 신문에 보도된 사고 상황 그림 나머지 6척의 배는 간신히 풍랑을 뚫고 아다크 항으로 긴급 대피하여 선원들은 더치 하버에 머물렀으며 이후 [[미국]] 현지 [[미합중국 해안경비대|해안경비대]]에서 5일간의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침몰한 선체는 물론 한 명의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이로 인하여 '''총 29명'''[* 선장 2명, 선원 25명, 부산수산대 실습생 2명.]'''의 생명이 허무하게 알류샨 열도 앞바다에 [[수장(장례)|수장]]당하고 말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삼양수산 정영준 사장은 피해자들의 위령제를 치루고 유족들과 보상 문제에 대하여 협의한 후 9월 26일 더치 하버에 도착하였는데 살아남은 선원들이 조업을 중단하고 돌아가겠다고 하자 이를 들어주기는커녕 다시 조업에 나서자고 설득하려 들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회사에 큰 손해가 가는 건 물론이고 이 사고에 대한 악평으로 차기 선단 구성에 애를 먹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호텔로 선단 간부들을 한두 명씩 불러 [[위스키]]를 권하면서 조심스럽게 설득했고 비교적 기상이 양호한 알래스카 만의 코디악 섬 인근에서 몇 차례 시험 조업 후 [[앵커리지]] 맞은 편의 케나이 반도에 상륙한 뒤 귀항하는 코스로 조업을 재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삼양수산 선단은 10월 2일 더치 하버를 떠나 알류샨 열도를 동북쪽으로 거슬러 코디악 어장으로 향했고 정 사장은 더치 하버에 남아 사건 수습 및 현지 어업담당관과의 미팅을 갖고 귀국하기로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